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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사] World History


 doubleo7 ( 2016-03-06 10:48:53 , Hit : 442
 1199년 영국 왕 리처드 1세가 죽고 동생 존이 계승하였으나 1214년 프랑스 필리프 2세에게 부빈 전투에서 패배했다.

십자군 중에서 가장 유명한 제3차 십자군 원정은 1187년에 이슬람 세계의 영웅인 살라딘에 의해 예루살렘이 이슬람 측에게 점령되었다는 소식을 들은 교황 그레고리오 8세의 요청에 의해 1189년에 시작되었다. 잉글랜드의 사자심왕 리처드 1세, 프랑스의 존엄왕 필리프 2세, 신성 로마 제국의 바르바로사 프리드리히 1세가 참가했다. 프리드리히 1세는 1190년에 무거운 갑옷을 입은 채 강을 건너다 미끄러져서 물에 빠져 익사했고 필리프 2세는 1191년에 아크레를 탈환한 뒤 리처드 1세가 없는 틈에 프랑스 내 잉글랜드 영토를 탈환하고자 한 속셈으로 귀국했다. 1192년 사자심왕 리처드는 살라딘과 휴전 협정을 체결하면서 예루살렘 탈환 작전은 실패로 끝났다. 사자심왕 리처드에 앞서 미리 귀환해 있던 필리프 2세는 신성로마제국의 하인리히 6세와 결탁하여, 리처드의 동생 존의 잉글랜드 왕위 찬탈을 지원했다. 리처드는 폭풍을 만나 배가 난파당하여 베네치아 부근 해변에 상륙했다. 1192년 12월 비엔나에서 오스트리아 공작에게 사로잡혀 뒤른슈타인 성에 유폐 당하는 신세가 되었다. 잉글랜드의 왕제 존은 리처드가 죽었다고 공표하고 왕위에 오르려고 했지만, 영주들의 지지를 얻지 못하여 단념하였다. 1193년에 리처드의 신병은 하인리히 6세에게로 양도되었으며 하인리히 6세가 필리프에게 넘겨버리겠다고 협박하자 막대한 몸값을 지불하고 1194년 2월에 풀려났다. 리처드는 석방된 후 잉글랜드로 돌아와 존을 굴복시켜 왕권을 회복했으나 채 1개월도 지나지 않아 필리프 2세와의 전쟁을 위해 프랑스로 떠났다. 《아이반호》와 《로빈훗》에서 리처드는 동생 존의 폭압적인 정치에서 나라를 구하는 것으로 묘사되었다.  필리프 2세는 아키텐 공작을 선동하여 리처드에게 대항하게 만들었고 1199년 아키텐 공작령에서 리처드 1세가 전사하고 존이 잉글랜드의 왕이 되었지만 전쟁은 그치지 않았다. 존의 실정을 틈타 유럽대륙의 영국령 영토를 계속해서 잠식해 들어갔고 이를 막기 위해 노르망디에 상륙한 존의 군대를 상대로 승리했다. 그 결과 1204년 말에는 아키텐과 노르망디 영국령이 필리프 2세의 손아귀에 들어가자 다급해진 존은 1214년 필리프 2세에 대한 복수를 위해 연합군을 조직했는데 여기에 잉글랜드, 신성로마제국, 플랑드르, 볼로뉴가 참여했다. 이 연합군을 상대로 필리프 2세가 이끄는 프랑스군이 부빈 전투에서 승리를 거두면서 유럽대륙의 영국령의 완전한 소멸을 의미하는 동시에 프랑스가 성립되었다. 한편, 잉글랜드의 존은 마그나 카르타에 서명하지 않을 수 없는 곤경에 처하게 되었다.





1204년 제4차 십자군이 콘스탄티노폴리스를 점령하고 서적 등을 약탈했고 이탈리아 지역은 상업과 공업이 발달하게 됨

1180년 프랑스 왕이 된 필리프 2세는 왕권 강화와 국력 신장 및 제3차 십자군 원정에도 참여한 존엄왕(Augus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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