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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사] World History


 doubleo7 ( 2016-05-01 18:12:44 , Hit : 385
 1517년 독일의 로마 가톨릭 교회의 신부였던 마르틴 루터가 교회의 면죄부 판매에 대한 논쟁으로 종교개혁이 시작되었다.

마르틴 루터는 독일의 로마 가톨릭 교회의 신부였으나, 로마 가톨릭 교회가 돈을 주고 티켓을 사면 죄가 없어진다는 면죄부를 판매하자 1517년 10월 31일, 비텐베르크의 만인성자교회 문 앞에 95개 논제를 내걸고 기존 교회와의 본격적인 논쟁에 들어가게 되었으며, 이것이 종교 개혁의 시작이었다. 그로 인해 개신교가 태동했다. 제네바에서는 칼뱅의 세속적 종교운동이 꽃을 피우게 되었다. 칼뱅의 제자였던 낙스는 스코틀랜드로 가서 개혁교회(Reformed Church) 신학을 전함으로써 스코틀랜드에 장로교 전통을 심었다. 지금도 스코틀랜드의 국교는 장로교회이다. 케임브리지 대학교 학생때부터 종교개혁자 마르틴 루터의 사상의 영향을 받은 토머스 크랜머 대주교는 1549년 영문 성공회 기도서를 작성하고, 아침, 저녁기도와 감사성찬례때마다 라틴어 성서가 아닌 영문 성서를 쓰도록 하여서 성공회 신앙의 토대를 마련하였다. 하지만 로마 가톨릭 신자인 메리 1세가 집권하여 영국의 국교를 로마 가톨릭으로 다시 바꾸고, 그에 따라 성공회와 개신교에 대한 탄압으로 이어지자, 크랜머 대주교는 휴 레티머, 니콜라스 리들리 주교등과 함께 화형으로 순교하였다. 이렇게 유럽이 점차적으로 교황청의 억압으로부터 서서히 벗어나면서 인문주의도 더 활발해지게 되었다. 그리고 이것은 훗날 문예부흥을 불러왔다. 신학의 시녀로서 빛을 보지 못했던 철학이 과학적인 방법의 도입과 더불어서 독자적인 길을 걸어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자연과학의 발달과 더불어서 무조건적인 신앙의 강요가 호소력을 잃어가고 있었다. 신대륙의 발견과 더불어서 박해받던 유럽의 개신교 신자들에게 탈출의 기회가 마련되었으며, 지금까지 억압받던 노동자와 농민들이 권리를 주장하기 위해서 조용한 시위를 일으키는 등 사회 전반에 걸친 새로운 양상의 변화가 일어났다.





1519년 독일 합스부르크 왕조와 부르고뉴 가문 및 스페인 전체를 물려받은 카를 5세는 1530년 신성로마제국 황제가 되었다.

1500년 이후 유럽에서 문화, 예술 전반에 걸쳐 고대 그리스와 로마 문명의 재인식과 재수용 운동 르네상스가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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