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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사] World History


 doubleo7 ( 2016-03-06 17:31:55 , Hit : 414
 1346년 오스만 제국의 오르한 1세는 동로마 황제와의 동맹을 계기로 트라키아에 진출, 유럽에서의 영토 확장을 개시했다.

오스만 제국은 1299년 오스만 1세가 아나톨리아(소아시아) 서북부에서 왕위에 오르면서 시작되었다. 1326년경 오스만의 뒤를 이은 그의 아들 오르한 1세는 즉위하고 나서 곧바로 동로마 제국의 지방도시 부르사 점령하여 부르사는 오스만 제국 최초의 수도가 되었으며 이후 유럽 대륙에 다다를 때까지 영토를 확대하였다. 1346년 오르한 1세는 동로마 황제 요한네스 6세 칸타쿠제누스와의 동맹을 계기로 다르다넬스 해협을 넘어 발칸 반도의 트라키아에 진출, 유럽에서의 영토 확장을 개시했다. 오르한 1세의 아들 무라트 1세는 즉위하자마자 콘스탄티노폴리스와 도나우 강 유역을 잇는 중요 거점인 아드리아노폴리스(오늘날의 에디르네)를 점령하여 이곳을 제2의 수도로 삼은 것과 동시에 상비포병군 예니체리를 창설하는 등 국가제도를 정돈하였으며 1389년에는 코소보 전투에서 세르비아 왕국을 필두로 한 발칸 제후국들의 연합군을 물리쳤다. 무라트 1세의 아들 바예지드 1세는 1396년에 불가리아 북부에서 니코폴리스 전투를 벌여, 이 전투에서 헝가리 왕국을 필두로 한 십자군을 격파, 오히려 영토를 더 크게 넓혔다. 그러나 1402년의 앙카라 전투에서 티무르에게 패배하였으며, 국내에는 왕자들 간에 후계 싸움이 일어나 제국의 확대는 일시적으로 멈추었다. 바예지드 1세의 아들 메흐메트 1세는 1421년에 제국 재통합을 성공으로 이끌면서 국력을 회복하였다. 그러한 배경을 바탕으로 그 아들 무라트 2세는 다시 자국을 침공한 십자군을 물리치면서 안정된 통치를 펼쳤다. 이렇게 국력이 다시 상승하자 1453년, 무라트의 아들 메흐메트 2세는 동로마 제국의 수도 콘스탄티노폴리스를 공략하여 마침내 동로마 제국을 탈환하였다. 이후 콘스탄티노폴리스는 오스만 제국의 수도로 다시 태어났고 이스탄불이라는 이름이 콘스탄티노폴리스를 대체하게 되었다. 1520년에 왕위에 오른 제10대 군주인 쉴레이만 1세 때에 오스만 제국은 더할 나위 없이 막강해져 능히 다른 나라를 압도하기에 이르렀으며, 그 영역은 중앙유럽과 북아프리카에까지 확장되었다. 신성로마제국과 대립하고 있던 프랑스의 프랑수아 1세와 동맹을 맺은 쉴레이만은 1529년에 신성로마제국의 수도 빈을 1개월 이상에 걸쳐 포위하였다. 비록 이 작전은 실패로 끝났지만, 오스만군이 서유럽 내 깊숙이까지 들어와 위협한 이 사건은 당시 서구 국가들에겐 큰 충격이었다. 게다가 1538년 프레베자 해전에서는 스페인과 베네치아 공화국 등을 위시한 기독교 세계의 연합 함대를 대파시켜, 지중해 거의 대부분을 손아귀에 넣는 데 성공했다.





1415년 헨리 5세는 프랑스 왕위 계승권을 확보했으며 백년전쟁에서 헨리6세는 1428년 샤를 7세의 거점인 오를레앙을 포위했다.

1340년 유럽 최대의 모직물 공업지대 플랑드르와 프랑스 왕위 계승권을 두고 잉글랜드와 프랑스가 백년전쟁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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